지은이: 이자벨 라캉 옮긴이: 김윤진 판형: 125×185 면수: 304면 장정: 양장 가격: 9,800원 분야: 문학 ISBN: 978-89-5913-298-0 03860 출간일: 2008년 4월 15일

 

한국계 프랑스 작가 이자벨 라캉이 오랜만에 국내에 선보이는 최신 장편소설

대한제국의 밀사와 프랑스 여인이 격동기 파리를 무대로 펼치는 비극적 사랑의 이중주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한국계 작가 이자벨 라캉의 최신 장편소설 『꽃들의 질투』가 출간되었다. 『꽃들의 질투』는 한국과 프랑스를 하나로 묶는 라캉 집안의 운명적 혈통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로, 구한말 프랑스에 파견된 고종황제의 밀사와 프랑스 여류사진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꽃들의 질투』는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일본의 야욕에 맞서 서구 열강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프랑스에 밀사로 파견되었던 나의 외증조부를 기리기 위한 소설이다!”

이자벨 라캉의 한국어판 서문에 따르면 이 작품은 그녀의 어머니가 평생토록 간직해 온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파리의 튈르리 공원을 배경으로 한 그 사진 속에서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과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자벨의 외증조부. 구한말 한성외국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첫 학생이었으며, 혁명과 계몽사상의 나라 프랑스를 동경했던 그는 국권수호의 임무를 띠고 고종황제의 밀사로 프랑스에 파견되었다고 한다. 1904년, 조선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러일전쟁의 와중에 보다 강력해진 일본을 견제하고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안타깝게도 수포로 돌아가고, 그 사이 조선의 정권을 손아귀에 쥔 일본에 의해 그는 상하이로 추방되고 만다.

  공식적인 역사로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자벨 라캉은 어머니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단서로 20세기 초 격변의 유럽대륙을 방황하는 조선 지식인의 여정을 섬세하게 뒤쫓는다. 이자벨의 외증조부로 분한 주인공 박일환은 유럽에서의 구국활동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시베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빈을 거쳐 파리에 입성한다. 하지만 자국의 잇속만을 추구하는 서양 국가들은 식민지를 만드는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을 뿐 알지도 못하는 약소국의 편이 아니다. 좌절감과 실망감이 쌓여가는 가운데 일환은 프랑스 여인 엘레나를 알게 되고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 동양과 서양, 열강과 약소국, 전통과 현대로 상징되는 상반된 멘탈리티의 만남이기도 한 둘의 사랑은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내 비운의 종장을 맞는다.

| 책 속으로 |

 그의 시선은 그랑 팔레의 둥근 지붕 너머 아득한 곳을 향하다 모래를 실은 바지선들과 잔잔한 흐름을 타고 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작은 보트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거기 빠져버리고 싶은 욕망. 석양빛에, 방울져 흐르는 바로크풍의 그 엷은 보랏빛에, 자신의 무능함과 절망만을 도드라지게 하는 비극적 오페라에.  자신이 맡은 임무의 공식적 목표가 거의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면, 빨리 파리 체류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것이 이성적인 판단 아닌가? 그런데 무척이나 당혹스럽게도 그 순간 그런 생각은 그토록 걱정하던 실패보다도 더욱 더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 201p